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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현의 경마 이야기 (4편) 소스를 주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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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수현 작성일22-10-12 15:59

본문

첫 베팅

“오늘 형 돈 좀 딸 거야.”


경마장 안으로 들어서자 진우가 자신 있게 말했다.


“대신 내가 하라고 할 때만 베팅해. 모든 경주를 다 하면 안 돼.”

“왜?”

“소스 오는 경주만 하면 돼.”


또 소스였다.

나는 아직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진우는 이미 두 번이나 내 돈을 두 배로 만들어온 녀석이었다.


200만 원이 400만 원.

100만 원이 200만 원.

그러니 솔직히 기대가 안 될 수가 없었다.


‘오늘도 정말 돈을 벌 수 있을까?’




과천 경마장 본장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6층 정도 되는 거대한 건물 안에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의자를 차지한 사람.

계단에 앉은 사람.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예상지를 펴놓은 사람.


입구에는 수십 종류의 경마 예상지를 팔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 책을 들고 서로 목소리를 높였다.


“이 말은 오늘 승부야.”

“아냐. 체중이 너무 빠졌어.”

“배당판을 봐. 저 말은 안 와.”

“기수 바뀐 거 몰라?”


처음 듣는 말들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나도 예상지를 한 권 펼쳐봤다.

그런데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말 이름, 기수, 마방, 마주, 부담중량, 조교 기록….


숫자와 기호가 빼곡했다.

초등학생에게 법전을 던져주고 읽으라는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진우야.”

“응?”

“이걸 보고 말이 들어오는 걸 안다고?”

“보다 보면 알아.”

“나는 봐도 하나도 모르겠는데.”


진우가 웃었다.


“오늘은 형이 몰라도 돼. 내가 알려주는 것만 보면 돼.”




드디어 1경주.


경주 약 10분 전부터 말들이 관람석 앞을 지나갔다.

전광판에는 말들의 체중 변화까지 표시됐다.

사람들은 예상지에 숫자를 적느라 정신이 없었다.

쌍안경으로 말 상태를 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경마도 공부를 꽤 많이 하는구나.’


그때 진우가 말했다.


“형, 이번에는 3번이 대가리 칠 거야.”

“대가리?”

“1등 한다고.”

“왜 3번인데?”

“상태도 좋고 우리나라 최고의 기수가 타.”

“누군데?”

“박태종.”


잠시 후 말들이 게이트에 들어갔다.

그리고—


쾅!


문이 열리며 말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엄청난 속도였다.

진우가 소리쳤다.


“형, 빨간 헬멧 봐!”


빨간 헬멧.

3번이었다.

처음부터 앞쪽에서 달렸다.

마지막 코너를 돌고 직선주로에 들어서자 사람들의 함성이 폭발했다.


“가!”

“3번!”

“잡아!”


그리고 정말로 3번 말이 제일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나는 멍하니 화면을 바라봤다.


“끝이야?”

“응.”

“벌써?”


2분도 채 안 된 것 같았다.

그리고 진우가 말한 3번이 너무 쉽게 1등을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경마… 별거 아니네?’


잘하는 기수가 좋은 말 타고 앞에서 달리면 되는 거 아닌가.

이거 생각보다 쉬워 보였다.

그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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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우야, 너 3번 샀어?”

“아니.”


나는 놀랐다.


“왜? 1등 한다며.”

“배당이 너무 낮잖아.”


전광판에는 단승 1.9배가 표시돼 있었다.


“10만 원 걸면 9만 원 버는 거 아니야?”

“맞아.”

“그런데 왜 안 해?”


진우가 웃었다.


“나는 그런 거 잘 안 해.”

“왜?”

“나는 복승 10배 근처나 그 이상을 노려. 그래야 크게 먹으니까.”


그렇게 2경주가 지나갔다.

진우는 안 했다.

3경주도 그냥 흘려보냈다.

나는 슬슬 답답해졌다.


“야, 오늘 돈 딴다며?”

“기다려.”

“언제까지?”

“소스 올 때까지.”


그리고 4경주.

그때 진우의 표정이 달라졌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은 모양이었다.

잠시 후 내게 다가와 목소리를 낮췄다.


“형.”

“왜?”

“왔어.”

“뭐가?”

“소스.”


순간 심장이 조금 뛰었다.


“몇 번인데?”


진우가 예상지를 손가락으로 찍었다.


“7번.”

“7번?”

“응. 그리고 인기 1등이 5번이야.”

“그래서?”

“복승 5번, 7번.”


나는 전광판을 바라봤다.


5번.

7번.


배당은 9.8배 정도였다.


“얼마 살까?”


진우가 말했다.


“그건 형이 결정해.”


잠시 고민했다.

첫날이었다.

경마가 뭔지도 제대로 몰랐다.

그런데 지난 두 번 진우가 보여준 결과가 자꾸 떠올랐다.


200이 400.

100이 200.


결국 나는 10만 원을 베팅했다.

복승 5번-7번.


내 인생 첫 마권이었다.


작은 종이 한 장.


그런데 내 돈이 걸린 순간부터 그 종이가 이상할 만큼 무겁게 느껴졌다.


“진우야.”

“응?”

“5번하고 7번이 들어오면 얼마야?”

“배당 그대로면 거의 98만 원 정도.”


나는 마권을 다시 바라봤다.

10만 원이 몇 분 뒤 거의 100만 원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말들이 하나씩 출발대에 들어갔다.

진우가 말했다.


“형, 5번은 파란 헬멧.”

“파란색.”

“7번은 어두운 밤색.”

“알았어.”


나는 화면 앞으로 몸을 바짝 당겼다.


5번.

7번.


그 두 번호만 찾았다.


마지막 말까지 게이트 안에 들어갔다.

순간 경마장 안의 공기가 묘하게 달라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화면을 바라봤다.

나도 모르게 마권을 꽉 쥐었다.


그리고—


빵!!!


게이트가 열렸다.


말들이 튀어나왔다.


“5번 어디 있어?”


파란 헬멧이 보였다.

앞쪽이었다.


“5번 있다!”


그리고 7번.

밤색 헬멧을 찾았다.

없었다.


“야, 진우야!”

“왜?”

“7번이 안 보여!”


말들은 이미 첫 코너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화면을 훑었다.

5번은 앞에 있었다.

그런데 7번은—

한참 뒤쪽이었다.


“야! 7번 뒤에 있잖아!”


진우는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형, 아직 멀었어.”

“이거 되는 거 맞아?”

“기다려.”


나는 마권을 움켜쥐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처음 경마장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말 번호 하나 제대로 몰랐던 내가,

불과 몇 시간 만에 수천 명의 사람들 틈에서 목이 타도록 두 개의 번호만 찾고 있었다.


5번.

7번.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뒤쪽에 있던 7번이 한 마리씩 앞의 말들을 잡기 시작했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진우가 갑자기 소리쳤다.


“형!”

“왜!”

“7번 올라온다!”


나는 화면 앞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다.


“7번 가!!”


그날,

내 인생 첫 번째 경마는

그때부터 진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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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태종 기수

한국 경마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박태종(52) 기수는 50세를 넘긴 나이에도 젊은 후배들 못지않은 활약을 펼치며 연일 경마의 역사를 새롭게 써가고 있다. 2000년 10월 종전 국내 최다승기록(722승)을 갈아치운 박 기수는 이후 해마다 평균 50승 이상씩을 거두며 한국 경마의 역사를 새롭게 써왔다. 

2004년 1월 31일 통산 1천승 고지를 밟았다. 2006년 120차례 우승해 개인 한해 최다승기록을 세웠고, 2009년에는 개인 최다인 654회 출전하는 등 거침 없는 승수 사냥과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기록제조기'와 '철인'이라는 명성을 얻었다.2016년에는 데뷔 30년 만에 50세를 넘은 나이로 현역에서 뛰면서 통산 2천승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충북 진천 출신으로 1987년 4월 제13기 후보생 시험에 합격, 경마에 입문한 그는 147㎝, 46㎏으로 기수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춘 데다 하루도 훈련을 거르지 않는 특유의 성실한 자세로 일찌감치 간판 기수 자리를 꿰찼다. 영광의 자리에 서기까지 1995년 낙마 사고로 오른쪽 무릎 인대가 끊어진 것을 비롯해 3차례나 큰 부상을 당하는 등 시련도 있었다. 하지만 박태종은 포기하지 않았고 지루한 재활훈련을 거쳐 무릎 부상 다음 해인 1996년에는 한해 최다승 우승기록을 세우며 재기에 성공했고, 이후에도 질주를 거듭한 끝에 대기록을 세우게 됐다.



추천1

댓글목록

호동이님의 댓글

호동이

소스 경마는 패인 첫번째 입니다

나무님의 댓글

나무

이젠 경마를 조금 잘 알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님의 댓글

나무

비밀글 관리자 확인 후 오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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