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현의 경마 이야기 (5편) 5번마와 7번마 > 정수현 이야기


정수현의 경마 이야기 (5편) 5번마와 7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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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수현 작성일22-10-19 21:10

본문

첫 적중

4경주.

12마리의 경주마가 1,300미터의 거리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게이트가 열리자 말들은 한꺼번에 튀어나왔고, 순식간에 직선주로를 지나 첫 코너로 접어들었다.

내가 산 건 복승 5번과 7번.

5번은 예상대로 앞쪽으로 치고 나갔다.


파란색 헬멧.


찾기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7번이었다.


“진우야, 7번 어디 있어?”

“저기 있잖아. 네 번째.”


찾았다.

짙은 밤색 헬멧.

7번은 4위쯤에서 달리고 있었다.

나는 순간 불안해졌다.


‘어라?’


나는 경마를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조금 전 1경주에서 박태종 기수가 탄 3번 말이 처음부터 앞장서서 그대로 1등을 하는 모습을 봤다.

그래서 머릿속에는 벌써 이상한 공식 하나가 만들어져 있었다.

앞에 가는 말이 좋은 말이다.

그런데 내가 돈을 건 7번은 앞에 있지 않았다.


“야, 진우야.”

“왜?”

“7번 저렇게 뒤에 있는데 괜찮은 거야?”


진우는 화면만 보고 있었다.


“괜찮아.”

“뭐가 괜찮아. 1등, 2등 해야 된다며.”

“형, 아직 멀었어.”

아직 멀었다고?

내 눈에는 벌써 불안하기만 했다.

5번은 앞에서 잘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7번은 여전히 네 번째.


‘두 마리가 같이 앞에서 달려야 들어오는 거 아닌가?’


답답했다.

하지만 내가 기수도 아니고 말을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지켜보는 것.

내 손에는 10만 원짜리 마권이 구겨질 정도로 꽉 쥐어져 있었다.




말들이 마지막 코너를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직선주로에 들어섰다.

그 순간부터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조용히 화면을 바라보던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

“밀어!”

“잡아!”


여기저기서 고함이 터졌다.

기수들도 말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채찍이 허공을 가르고 말 엉덩이를 때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기수들의 고함.

수천 명의 함성.

말발굽 소리.

모든 소리가 한꺼번에 뒤엉켰다.


두두두두두두—


그 말발굽 소리가 땅을 울리는 게 아니라 내 가슴을 직접 두드리는 것 같았다.


쿵.

쿵.

쿵.

아니.

그 순간에는 심장이 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잠시 멎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앞에서는 5번이 여전히 선두였다.


“5번 간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남은 거리 200미터.

화면에 순위가 잡혔다.


1위 5번.

2위 9번.

3위 1번.


그리고—


4위 7번.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끝났나?’


5번은 들어올 것 같았다.

하지만 복승은 두 마리가 모두 1, 2등 안에 들어와야 했다.

7번이 4등이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야! 진우야!”

“왜!”

“7번 안 되잖아!”


그런데 진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7번 기수가 말머리를 바깥쪽으로 틀었다.

그리고 채찍을 크게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때부터 7번 말의 움직임이 완전히 달라졌다.


“어?”


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였다.

달리는 게 아니라 솟구치는 것 같았다.

앞으로 길게 뻗은 말머리는 마치 용이 승천하듯 힘차게 흔들렸고, 앞다리는 모래바닥을 찍을 때마다 땅을 부술 듯 내리꽂혔다.

뒷다리는 마치 새 용수철로 갈아 끼운 것처럼 힘차게 차올랐다.

기수는 조금이라도 바람의 저항을 줄이려는 듯 가슴을 말 등에 바짝 붙였다.


그리고—


7번이 1번을 잡았다.


“잡았다!”


다음은 9번.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7번!”


내 입에서 소리가 터졌다.


“7번 가!”


아까까지만 해도 경마장에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많은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그들과 똑같아져 있었다.


“가! 가! 가!”


7번은 9번마저 넘어섰다.

이제 앞에는 5번뿐이었다.

내가 산 두 마리.


5번.

7번.


둘이 나란히 결승선을 향해 달렸다.

사람들의 함성이 폭발했다.


“와아아아아!”


나도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5번! 7번!”


결승선이 가까워졌다.

10미터.

5미터.

그리고—

두 마리가 거의 동시에 골인했다.


나는 아무것도 구분할 수 없었다.

파란색 헬멧과 짙은 밤색 헬멧이 한 덩어리처럼 결승선을 통과했다.

잠시 멍해졌다.


“진우야.”


대답이 없었다.

진우도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진우야!”

“왜!”

“5번하고 7번 들어온 거야?”

“응!”

“진짜야?”


진우가 내 등을 한 대 쳤다.


“형! 들어왔어! 5번, 7번!”


그제야 상황을 이해했다.

내가 산 두 마리가 모두 들어왔다.

나는 한 박자 늦게 주먹을 들어 올렸다.


“아싸!”

그 짧은 한마디가 얼마나 크게 나왔는지 나도 몰랐다.




잠시 후 전광판에 결과가 떴다.

7번.

5번.

놀랍게도 7번이 코끝 차이로 5번을 이겼다.


“7번이 1등이야?”

“응.”

“아까 네 번째였잖아.”


진우가 웃었다.


“저런 말을 추입마라고 해.”

“추입마?”

“뒤에서 따라가다가 마지막에 치고 올라오는 말.”


나는 화면을 다시 바라봤다.

조금 전 그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서 반복됐다.

4등이었던 말이 마지막 200미터에서 순식간에 앞말들을 잡아버리는 모습.

처음부터 앞에서 달리는 말은 선행마.

뒤에서 기회를 보다가 마지막에 치고 올라오는 말은 추입마.

그날 나는 경마 용어 두 개를 확실하게 배웠다.

선행마.

추입마.

그런데 사실 그것보다 더 강하게 머리에 박힌 것이 있었다.

10만 원짜리 마권 한 장.

그리고 불과 2분 남짓한 시간.

내가 받은 돈은 약 98만 원 가까이 되었다.

투입한 10만 원을 빼고도 큰돈이었다.

나는 돈을 받아 들고 한동안 바라봤다.


‘이렇게 쉽게?’


며칠 동안 일해서 버는 돈을 몇 분 만에 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장이 아직도 진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때 진우가 말했다.


“형, 가자.”


나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뭐?”

“집에 가자고.”

“지금?”

“응.”

“왜?”

“오늘은 더 없어.”

“뭐가 없어?”

“소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제 막 재미가 붙기 시작했는데 가자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다음 경주도 하고 싶었다.


‘한 번만 더 하면 또 벌 수 있는 거 아닌가?’


“야, 진우야.”

“왜?”

“한 경주만 더 하면 안 돼?”

“안 돼.”

“왜?”

“오늘은 끝이야.”

“아까 보니까 예상지로도 맞히던데?”


진우가 웃었다.


“형, 오늘 내가 뭐라고 했어.”

“뭐?”

“내가 하라는 경주만 하라고 했잖아.”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미 내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자라기 시작했다.


‘경마라는 거… 생각보다 쉬운 거 아닐까?’

나는 진우를 따라 경마장을 나오며 물었다.


“진우야.”

“응?”

“우리 내일 또 오자.”


진우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형, 경마가 매일 하는 줄 알아?”

“매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에 하는 거야.”


나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래?”

“응.”

“그럼 다음 주에는 금요일부터 오자.”


진우가 나를 쳐다봤다.


“벌써 재미 붙었어?”

“아니, 뭐….”


나는 괜히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돈 벌 수 있는데 와야지.”


진우는 웃었다.

하지만 나는 몰랐다.

그날의 첫 적중이 내게 얼마나 강한 착각을 심어주었는지를.

처음 와서,

첫 베팅에,

10만 원을 걸어 거의 열 배 가까운 환급을 받았다.

그러니 내가 경마를 어렵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이거 잘만 하면 돈 되겠는데?’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다음 주 금요일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경마라는 세계는 내가 첫날 본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곳이 아니었다.

첫날 내게 보여준 것은 어쩌면 가장 달콤한 얼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다음 주 금요일.

나는 처음보다 훨씬 많은 돈을 들고 다시 과천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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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마의 스타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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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마의 실제 경주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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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나무님의 댓글

나무

이젠 경마를 조금 잘 알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님의 댓글

나무

비밀글 관리자 확인 후 오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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