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현의 경마 이야기 (17편) 900만원...드디어 구찌 가방의 주인공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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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수현 작성일22-10-26 21:10본문
한 경주에 900만 원
현장은 아니었다.
하지만 큰 모니터 두 대를 눈앞에 두고 경주를 보고 있으니 심장은 경마장에 있을 때와 똑같이 뛰었다.
아니, 어쩌면 더했다.
나는 컴퓨터 앞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다.
“11번!!!”
“11번 가!!!”
그런데—
진짜 올라온다.
한 마리.
또 한 마리.
세 마리를 연속으로 제쳤다.
‘어라?’
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진짜네?”
아직 200미터.
11번은 바깥쪽이라 앞을 막는 말도 없었다.
150미터.
또 두 마리를 제쳤다.
100미터.
앞선 말들을 또 잡아먹는다.
나는 엄지손톱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양재동에서 신사동까지 신호등을 전부 무시하고 달리는
콜 자가용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50미터.
이제 앞에는 단 한 마리.
조성곤의 인기마 5번.
한 마신.
반 마신.
그리고—
골인!!!
“누구야?”
조성곤인지 유현명인지 알 수가 없었다.
코끝 차이.
사진 판독이었다.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1분.
3분.
5분….
나는 미칠 것 같았다.
어제 이 한 경주를 분석하는 데만 한 시간을 썼다.
지난 경주 영상까지 몇 번씩 돌려보고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11번을 찾아냈다.
그리고 오늘—
총 40만 원을 승부했다.
5번-11번 복승에 10만 원.
삼복승까지 적중.
일단 복승 27.4배.
10만 원이 274만 원.
삼복승 22.3배.
5만 원이 111만 5천 원.
여기까지는 이미 들어왔다.
하지만 진짜 승부는 따로 있었다.
쌍승 11번-5번.
유현명이 이기면 52배.
10만 원을 걸었다.
520만 원.
“제발 유현명….”
“제발….”
드디어 화면에 결과가 떴다.
1착 11번.
2착 5번.
나는 그대로 소리를 질렀다.
“악!!!!!”
유현명이 이겼다.
그것도—
코 차이였다.
274만 원.
111만 5천 원.
520만 원.
화면 속 내 아이디 옆 숫자가 바뀌었다.
9,055,000원.
나는 한동안 그 숫자만 바라봤다.
“구백….”
진짜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내가 찾아낸 말이었다.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말을 몇 달 전 기록까지 뒤져서 찾아냈고—
그 말이 정말 1등으로 들어왔다.
‘역시 나는 한국 경마에 재능이 있어.’
지금 생각하면 바로 그 생각이 가장 위험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나는 병수 형에게 바로 전화했다.
“형!!! 나 900만 원 땄어!”
“뭐? 진짜?”
“유현명이 똥말 타고 대가리 쳤어! 내가 잡았다고!”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병수 형 사정 따위는 생각도 안 났다.
내 목소리는 이미 볼륨 10이었다.
“형, 이번 주말에 내가 제대로 쏠게! 진짜 고마워!”
전화를 끊고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오늘은 더 이상 경마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내가 나한테 상을 주고 싶었다.
문득 몇 달 전 압구정 현대백화점에서 봤던 구찌 가방이 생각났다.
가격은 약 350만 원.
너무 마음에 들었지만 가격표를 보고 조용히 내려놓았던 바로 그 가방.
‘그래. 오늘은 사자.’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가방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래. 오늘부터 내가 네 주인이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350만 원짜리 가방은 감히 살 수 없는 물건이었다.
그런데 경마 한 경주로 900만 원이 생기자—
세상이 달라 보였다.
그리고 백화점을 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주점에서 밤새 일하고 손님 비위 맞추며 버는 돈.
그리고 오늘 내가 한 경주에서 번 돈.
머릿속에서 두 개의 숫자가 자꾸 비교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정말 위험한 생각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잠깐만….’
‘나 주점 안 나가고 그냥 경마만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일… 그만둘까?’

댓글목록
나무님의 댓글
나무이젠 경마를 조금 잘 알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님의 댓글
나무